‘뉴로트라이브’ 북콘서트, 자폐의 역사와 이해

지난 10월, 이베이코리아가 후원하고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가 주최한 ‘자폐이해 북콘서트’가 개최됐다.

이베이코리아는 올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용품관인 옥션 케어플러스에서 ‘따뜻한 이해’란 프로모션을 열었다. ‘따뜻한 이해’ 코너에서는 발달장애 용품을 선보이는 한편, 발달장애인을 위한 도서를 출판하는 피치마켓을 통해 발달장애 이해에 도움이 되는 도서를 지역 복지관 등에 전달한 바 있고, 이게 인연이 되어 ‘자폐이해 북콘서트’를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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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콘서트에서는 자폐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뉴로트라이브’ 역자 강병철 소아과의사의 강연이 진행됐고, 약 130명의 신청자들이 참여했다.

 

자폐이해를 위한 필독서 ‘뉴로트라이브’ 그리고 역자 강병철

책 ‘뉴로트라이브’는 IT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인 스티븐 실버만이 약 5년 간 공부하고 직접 자폐성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쓴 도서다. 책의 제목인 ‘뉴로 트라이브(Neurotribes)’는 Neuro(신경)와 Tribes(부족)이 합쳐진 말로, 뇌의 신경이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람들, 가족과 같이 동질적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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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질병이 아닌 뇌의 작동 방식이 다른 ‘신경다양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라보면서, 이 책은 과학 분야 최초로 2015년 미국 새뮤얼존슨 논픽션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이 ‘뉴로트라이브’ 책을 번역한 강병철 역자가 오늘 자폐이해 북콘서트의 강연자로 나섰다.

‘뉴로트라이브’로 강연을 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귀국한 강병철 역자는 이 책을 가리켜 자폐인과 가족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한 책이라 소개했다. ‘뉴로트라이브’ 저자인 스티브 실버만이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에 UN에서 기조 연설을 했다는 사실로도 굉장히 중요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란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저자가 아닌 역자라는 이유로 대중 강연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발달장애가족과 자폐인 가족모임 등에서 강연을 부탁해 왔고, 장소와 비용 후원 등의 이유로 열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뉴로트라이브’ 북콘서트가 10월 29일 이베이코리아의 후원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베이코리아 홍윤희 이사는 “’뉴로트라이브’는 자폐 스펙트럼의 편견을 깨는 책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자폐 스펙트럼뿐 아니라 나와는 다른 것들에 대해 신경과학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라며 ‘자폐이해 북콘서트’ 시작에 앞서 강별철 역자를 소개했다.

 

 

자폐성 장애의 역사를 함께한 다섯 명의 주요 인물로 알아온 자폐의 역사와 이해

 

1. 레오 카너

이름이 없으면 그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매우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레오 카너는 ‘자페증(Autistic)’이라는 이름을 처음 불러준 사람이다.

카너는 소아정신의학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정신의학(1935)’을 발간했다. 이후 당시 최초로 대중매체에 육아 관련 칼럼을 써서 스타덤에 올랐고, 존스홉킨스에서 최초로 어린이병원을 설립하며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 중서부의 한 시골에서 카너에게 편지가 한 통 왔다. 자신의 아들이 웃지도 않고 반응도 없고 사람도 싫어한다며 아들의 증상에 대해 자세히 적은 한 아버지의 편지였다. 카너는 이 아이를 직접 만났으나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특이한 병이라 어떻게 진단할지를 몰랐다. 그런데 카너와 아주 가까운 독일 의사가 이러한 아이들을 독일에서 많이 봤다며 주요 특징들을 가르쳐준다. 카너는 그 특징들을 바탕으로 아이와 비슷한 환자 11명을 모아 논문을 썼고, 처음으로 ‘자폐증(Autistic)’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카너는 최초로 조기유아자폐증을 발견했고, 이후 자폐성 장애를 ‘카너 증후군’으로도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 카너는 자폐성 장애가 첫 돌 이전에 생기는 병이고, 부모의 유해한 양육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등 수많은 오류를 범해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한스 아스퍼거

두 번째 인물은 한스 아스퍼거이다. 그는 비엔나 어린이병원에서 수련받았는데, 이 곳은 아이들을 치료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해야한다는 선진적 사고를 가진 기관이었다. 아스퍼거는 다루기 어렵고 반항적인 아이들을 관찰해 각자에게 맞는 일을 찾아주었고, 아이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어떻게 타고났는지를 발견해야 함을 깨달았다.

또 아스퍼거는 ‘자폐성 장애의 스펙트럼’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발견했다. 자폐성 장애의 특징이 나타나는 어린이 100명을 조사한 결과, 다양한 증상이 존재했고 정말 스펙트럼이 넓었다. 이 중 일부는 기억력, 집중력, 그림 그리기, 언어적 능력 등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자폐성 지능’도 가지고 있었다. 아스퍼거는 이러한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별 맞춤 교육 방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뉴로트라이브’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이 자폐성 지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폐성 장애인인 폴 디렉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져 노벨상을 수상했고, 테슬라는 에디슨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으로 당시 현대의 스마트폰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존 메카스는 MIT와 스탠포드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네트워크 컴퓨팅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이다. 이렇게 자폐성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현대라는 시대를 만들며 인류 문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3. 버나드 림랜드

버나드 림랜드의 아들 마크 림랜드는 자페아였다. 버나드는 아들의 병을 완치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전국 출장을 다닐 때마다 각 지역의 제일 큰 대학 도서관을 방문해서 자폐성 장애 관련 논문을 찾아보곤 했다. 그런 그를 본 부인은 지금까지 수집한 자폐성 장애 관련 자료들로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결국 그는 심리학 분야 원고 모집에 당선되어 ‘유아자폐증(1964)’이란 책을 발간했다.

버나드는 책 맨 뒷장에 자폐성 장애 아이들의 증상에 관한 설문지를 넣었는데, 어느 날부터 수십통의 설문지들이 버나드의 우편함에 쌓였다. 자폐성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이 버나드의 책을 읽고 비로소 우리 아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결국 그는 자폐인 커뮤니티에서 ‘버니아저씨’로 불리며 모두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폐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부모들의 잘못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수용시설에 아이들을 가둬두면 오히려 상태가 안좋아지기 때문에 각자에게 적합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미자폐어린이협회(National Society for Autistic Children)’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키려 노력하기도 했는데, 버나드에게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완치’에 대한 강한 집념때문에 근거 없는 생리학적 치료와 대체의학을 시도한 것이다. 그가 지지한 행동요법에서도 전기충격 등 무리한 시도를 많이 했다.

 

 

4. 루스 설리번

버나드 림랜드와 함께 전미자폐어린이협회에서 활동했던 루스 설리번은 자폐성 장애에 대해 더 나은 사회적 서비스를 요구하던 사람이다. 결국 국가에서 자폐아동교육을 지원해주는 ‘장애아동교육법’으로 결실을 맺었으나, 아이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림랜드와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설리번의 의견 차이로 전미자페어린이협회는 둘로 쪼개졌다.

아직까지도 당시 버나드가 말했던 완치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신 때문이다, 환경이 오염되서 그렇다, 독소가 있는 음식이 문제라는 등 다양한 원인을 말하며 생리학적 치료법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치료법을 연구하는데 예산과 시간을 쏟는 것보다 지금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모들을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생산적인 방법이다.

 

 

5. 로나 윙

로나 윙은 영국 런던 출신 정신과 의사이다. 자폐 아이의 부모이기도 했던 그녀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런던 내 정신질환 환자의 수를 조사하는 업무를 진행했다. 실제 현장에서 보니 과거 카너가 세운 진단기준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자폐의 특성이 나타나는 어린이가 많았다. 카너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자폐증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실 일부 조건에만 해당되는 사람이 많았고 이들은 하나같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로나 윙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폐’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인생의 숙원사업으로 여겼다.

그녀는 카너가 말한 모든 조건들을 만족해야만 자폐인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누구나 포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해주면 향상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를 ‘자폐 연속선(Autistic continuum)’, 또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그녀는 관련 문헌을 찾다 아스퍼거의 논문을 재발견했고, 과거 그가 이미 모든 내용을 정리해 둔 것에 감탄하여 자폐성 장애의 낙인을 해소하고자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제안했다. 이때 영화 ‘레인맨’이 등장하여 자폐장애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앞으로도 자페성 장애에 관해 웹툰,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가 등장해 인식을 개선시키고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6. 최근까지의 ‘자폐성 장애’ 관련 논의

사람들은 자폐성 장애가 최근 들어 크게 증가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DSM의 진단 기준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DSM은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을 수록한 책인데 현재 DSM5까지 나와있다. DSM1과 2에는 자폐증이라는 말도 없었다. 1980년 DSM3에 처음 ‘유아자폐증’이라는 병명이 수록되었는데 이때 유병률이 1만 명 중 4명이었다. DSM3-R에 로나 윙이 진단 기준 제정 위원회에 참여해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많이 추가한 후 유병률이 1만 명 중 7명으로 증가했다. 4년 뒤인 1991년에는 미국에서 자폐 진단을 받는 어린이에게 국가에서 특수 교육을 제공한다는 법이 제정되면서 유병률이 일거에 1만 명 중 70명으로 증가했다. 의사들이 자폐증 진단서를 쉽게 발급해주었기 때문이다. 1994년도 DSM4 발간 후에는 다시 유병률이 1만 명 중 150명으로 상승했고, 2013년 DSM5 이후로는 1만 명 중 170명이 되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 중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템플 그랜딘은 자폐인으로 유명 대학의 교수이자 가축을 도축하는 과정에 사용되는 설비, 설계 부분의 전세계 최강자이시다. 설계를 하면 모형이나 시뮬레이션 없이 머릿속에서 바로 설계를 완성하는 천재적인 자폐성 지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할 수 있다. 그녀는 실제 본인의 자폐성 장애 경험을 생생하게 말해주어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도왔다.

짐 싱클레어는 자폐인이자 성소수자였는데 다른 자폐인 두 명과 함께 ‘자폐성 공간’을 형성하고 있을 때 서로를 이해하고 편하게 있을 수 있음을 느꼈다. 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에 메일링리스트를 만들어 자폐인들끼리 교류하는 장을 만들었고, 국제 자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제는 자폐인들 스스로 autreat라는 학회도 개최한다. 자폐인들은 자폐를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로 볼 것을 제안한다. 인간의 정신은 무한히 다양하며 자폐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도 그 중 일부일 뿐 병이나 장애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자폐인들은 Wrong Planet’이라는 인터넷 공간을 만들고, 자폐증 자기 권리옹호 네트워크 (ASAN: Autism Self Advocacy Network)를 통해 정책 결정에도 참여하며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다.

 

 

“부드럽지만 강인하게 주장하고 연대하자” – 북콘서트를 마치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콘서트에 참여한 130여명의 청중들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에도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북콘서트를 마무리하며 강병철 역자는 역자로써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에 민망한 감정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도 이런 지식을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폐 케어에 전액 비용을 지원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자폐 조기 진단, 적절한 교육, 잠재력 개발 등에 부모들이 느끼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표준 치료 전략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점, 원인과 완치 방법에만 연구가 집중되고 있는 점,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게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 등을 꼽으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당당하게 주장하고 연대하며 항상 평화로우시길 빈다.”고 전했다.

자폐를 제거할 질병이 아니라 인류의 소중한 유전적 유산으로 생각하자는 생각이 퍼져나가면서 자폐친화적인 연극을 기획하고,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 시스템을 설계하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에서는 자폐인들의 잠재력을 발견해 탁월한 성과를 내는가 하면, 대학에서는 뛰어난 자폐성 지능을 가진 사람들을 자폐 연구에 참여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런 시도가 계속 이어지도록 온 사회가 함께 연대해야 한다.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폐 공동체 내외적으로 스스로 차별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부드럽고 강인하게 주장하며 연대하기를 바란다.